스탠퍼드 대학 동창 모임에서 우연히 나눈 대화 하나가 역사를 바꿨다. 게임 음악이 그래미 어워드를 받는다는 건 상상조차 못 하던 시절, 작곡가 크리스토퍼 틴은 친구 덕분에 맡게 된 의뢰 하나로 그 역사를 직접 써 내려갔다. 인간관계의 소중함이 음악의 역사를 바꾼 이야기.

동창 모임에서 시작된 우정의 음악
2005년, 크리스토퍼 틴은 스탠퍼드 동창 모임에서 구 룸메이트 소런 존슨을 다시 만났다. 존슨은 당시 <Civilization III> 팀에서 일하고 있었고, 틴이 문명 시리즈를 열렬히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. 몇 달 후 존슨은 틴에게 연락했다. <Civilization IV> 인트로 음악을 맡아줄 수 있겠냐고. 틴에게는 두말할 것 없는 기회였다.
영감은 게임 메인 메뉴 화면에서 왔다. 우주에서 바라본 지구의 모습, 북아프리카 위로 태양이 30초마다 솟아오르는 영상 루프. 틴은 훗날 이렇게 회고했다. "아름답고 고요했고, 거의 즉각적으로 곡의 오프닝 음들이 내 머릿속에서 흘러나오기 시작했다." 그렇게 <Baba Yetu>의 첫 음들이 탄생했다.

주기도문, 스와힐리어로 노래하다
<Baba Yetu>라는 제목은 스와힐리어로 "우리 아버지"를 뜻한다. 가사 전체는 성경의 주기도문을 스와힐리어로 번역한 것이다. 전 세계인이 한 화면 위에 모이는 문명 시뮬레이션 게임의 테마로서, 이보다 더 적절한 선택이 있었을까. 고대 동아프리카어로 불리는 기도는 게임을 넘어 하나의 음악적 선언이 되었다.
틴은 스탠퍼드 대학 합창단과 함께 곡을 완성했다. 서양 오케스트라와 아프리카적 리듬이 어우러진 이 곡은 게임 음악의 기존 문법을 완전히 벗어났다. 웅장하고, 영적이고, 문화의 경계를 초월한 사운드였다.
"아름답고 고요했습니다. 거의 즉각적으로 오프닝 음들이 내 머릿속에서 흘러나왔습니다."— 크리스토퍼 틴, 곡 탄생 순간에 대해
게임은 2005년 출시됐고, 오프닝 테마는 수많은 플레이어의 기억 속에 각인됐다. 하지만 크리스토퍼 틴의 진짜 이야기는 그로부터 6년 후에 쓰였다.

역사가 된 우정, 역사가 된 수상
2011년, 제53회 그래미 어워드에서 <Baba Yetu>는 "보컬 동반 최우수 기악 편곡" 부문을 수상했다. 게임 음악이 그래미를 받은 것은 인류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. 곡이 수록된 틴의 데뷔 앨범 <Calling All Dawns>는 "최우수 클래식 크로스오버 앨범" 부문까지 함께 수상하며 더블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.
이 수상 이후 그래미 아카데미는 시각 미디어 부문의 명칭을 개편해 게임 음악을 더 적극적으로 수용하기 시작했고, 2022년에는 게임 음악 전용 그래미 부문까지 신설됐다. 하나의 동창 모임, 하나의 우정, 그리고 하나의 곡이 업계 전체의 지형을 바꾼 것이다. 친구 관계의 소중함을 이렇게까지 증명할 줄은 크리스토퍼 틴 자신도 몰랐을 것이다.